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그러자 나는 무슨 소리냐고 물어봤다. 소리에 소리가 부딪힌다. 고가철도 밑에서 잠시 서 있다가 전시장으로 이동한다. 오래된 풍경은 새로움에 잠식되는 줄만 알았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오래됨에 매료되는 인간은 그 시기를 살았던 사람뿐만 아니다. 왜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에 항상 정당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 현재가 부딪히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이 흐름에 나도 몸을 맡긴 지 오래다. 하나의 아쌍블라주(assemblage)처럼, 우리는 과거를 연명시키면서 지금을 수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템포에 몸을 맡기면서. 이곳에는 시간들이 가볍게 나열된 것 같다. 근대적 발전, 식민지 지배, 고도성장의 역사는 일직선으로 교체되지 않는다. 하나가 또 다른 하나를 만나자, 이 둘이 결합되어 시간은 흘러간다. 그사이에 다른 결이 끼어들게 된다. 나는 타고 온 전철, 그 창문에 맺힌 물방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충돌은 하나와 다른 하나가 부딪히는 현상이다. 둘이 부딪힌 자리에 남는 것은 잔해이다. 이 잔해를 보고 우리는 사물과 사물이 부딪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충돌은 사물이 부딪히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방향을 가진 시간성이 부딪히는 것을 말한다. 이쪽에서 온 것이, 저쪽에서 온 것을 만나거나, 같은 방향에서 오다가 한쪽이 급회전하거나, 각각 비스듬하게 가다가 만나 버린—다르게 흐르던 시간이 만났을 때 충돌이 발생한다. 그것은 비단 큰 사건/사고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가볍고 작은, 끊기면서 이어지는 현재에 찾을 수 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잡아먹지도 않은, 그런 상태에 충돌은 심오함에 앞서 감각적인 진동을 가져다준다. 이 진동—작가, 그리고 관객과의 ‘공진’은 전시 《크래쉬!》에서 어떻게 전달될까.
김소영과 존 이 프라이스(Jon E Price)의 전시 《크래쉬!》는 일상에서 수집한 기호들, 반복되는 도시의 리듬, 산업화된 환경에서 규범화된 이미지에 주목한 작업을 통해서 도시의 시간성과 산업, 시스템이 맞물리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을 탐구한다. 김소영은 일상에서 수집한 클립을 픽셀화하여 반복된 ‘패턴’으로 보여주고, 존 이 프라이스는 충무로의 인쇄 골목에서 만난 인쇄기의 소리에서 출발하여 영화의 발상지인 이 지역의 역사를 (필름 사진 상영과 사운드에 기반한) 영화적cinematic 작업을 통해 겹쳐 본다. 김소영의 작업에서 충돌은 미끄러짐을 끄집어낸다. 출품작 <Harder!> (2025)는 선풍기가 멈추는 각도에서 이미지가 상영된다. 멈춘 시간은 휴식을 상상하게 하지만, 결국 쉬지 않고 픽셀화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틈새 시간이라는 개념은 쉬는 시간을 효율성이라는 명목을 통해 노동으로 활용된다/당한다. 나이트비전 카메라로 포착한 이미지를 송출하는 <#00FF00> (2024)도 같은 맥락이다. 녹색 100%의 색상 코드를 의미하는 제목에서, 작품은 보안과 안전, 친환경의 의미 또한 효율성으로 읽히게 된 사회상을 감시자와 비슷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분리되고 파편화하는 이미지는 존 이 프라이스의 작업에서 과거를 감각적으로 (되)찾는 단서가 된다. <Machine Suite>(2025)은 작가가 기록한 35mm 사진 영사와 사운드의 결합으로 구성된다. 분절된 동작 속에 영화의 탄생과 산업적 노동의 흔적이 이어질 때, 감상자의 사유는 현재와 과거의 복합체를 이룬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타지에서 만난 현재와 과거는 작가가 지낸 사우샘프턴(Southampton)이라는 또 다른 공업 도시로도 이어진다. 분절된 시각 또는 청각적 이미지는 김소영과 존 이 프라이스의 작업에서 그리움에 소환된 과거나 현재와의 괴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공간적 축을 만난다. 이러한 만남은 《크래쉬!》에서 기술적 발전과 노동력이 대체되는 변화 속에 전환되고 미끄러지는 지점을 들여다보게 해 준다—사실은 그 안에 ‘마찰’이 있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시각과 청각을 아우른 장면과 소리—이 말로 설명되기 어려운 요소는 현재에 진동과 진폭을 가지고 온다. 반복되는 리듬은 노동의 현재와 과거의 시공간에 각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거기서 뛰어나오거나 튕겨 나온다. 시각적이고 청각적으로 쪼개진 잔해—파편들이 여기까지 들려온다. 이 마디들은 과거와 현재, 인간과 기계, 놀이와 노동을 오버랩(overlap)하도록 한다.
